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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이 존경한 이순신 장군

기사승인 2019.01.23  14: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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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

요즘 광화문의 상징인 이순신 장군 동상의 이전 여부를 놓고 여론이 들끓고 있다.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을 넓히는 계획의 하나로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좌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촛불시위의 상징물을 새긴다고 발표한 데 대해 반발 여론이 터져나온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1966년  한일협정 체결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김종필 민주공화당 의장에게 "세종로 네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하고 외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주문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어느덧 반세기가 지나 이제는 우리 국민 누구나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수도 서울의 상징이자 대한민국의 수호신처럼 받아들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이 나빠지자 박원순 시장이 급히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촛불이 모든 것에 우선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발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일본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안다면 동상을 함부로 옮길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1905년 5월, 러일전쟁의 명운을 가를 일본 함대와 러시아 박틱함대와의 쓰시마 해전을 앞두고 일본 해군 중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 기도하고 나간 장병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그의 작품 『언덕위의 구름』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 어뢰정 함장이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게 빌었다.”는 기록을 남겼다는 걸 필자(시바 료타로)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자료에 있었는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 또 하나 --- 『포탄을 뚫고서』라는 것이 있다.

저자는 가와다 이사로라는 해군 소령으로서 이 시기에 어뢰정 소위였다. 이 『포탄을 뚫고서』를 보니 과연 주인공이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게 기도하는 부분이 있었다.

“세계 제일의 해군 장수”

라고 저자가 말하는 이순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해전에서 이를 무찌른 조선의 명장이다. 이순신은 당시 조선의 문무 관리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청렴한 인물로서 병사를 거느리는 재능과 전술 능력 그리고 그 충성심과 용기를 볼 때 실존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이상적인 군인이었다. 영국의 넬슨 이전에 바다의 명장이랄 수 있는 사람은 세계사상 이 이순신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서는 그후 오랫동안 잊혀져 왔지만, 오히려 일본측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계승되어 메이지 시대에 해군이 창설되자 그 업적과 전술이 연구되었다.

진해만에서부터 부산에 걸친 수역은 일찍이 이 이순신이 그의 수군을 이끌고서 일본의 수군을 괴롭혔던 전쟁터였는데 우연하게도 도고 함대는 그 부근을 빌리고 있었다.

이 시대의 일본인은 러시아 제국이 동 아시아를 평정하여 자기 세력권에 넣으려 한다고 보았으며, 동진해 오는 발틱 함대를 그 최대의 상징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을 한척도 남김없이 침몰시키는 것은 동 아시아의 방위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으며, 동 아시아를 위한 일인 이상 일찍이 아시아가 배출한 유일한 바다의 명장의 영혼에게 빈다는 것은 당연한 감정일는 지도 몰랐다.” (『언덕위의 구름』 제10권, 36~37쪽, 이송희 옮김, 명문각, 1992)

"조선에서는 그후 오랫동안 잊혀져 왔지만, 오히려 일본측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계승되어~~"라는 대목을 우리는 눈여겨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함부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옮기려는 시도는 민족과 역사에 대한 배신행위라고해도 지나친 지적은 아닐 것이다. 

 

이호 기자 webmaster@sejongeconomy.kr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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